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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향린강단
제 목 : 2018년 5월 27일 "여러분은 이 얘기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레위기 4)
글번호 : 763    조회 : 124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18-05-31 09:56:15   
 
2018년 5월 27일 / 성령강림절 둘째 주일
지겨운 레위기, 재미나게 읽자 4

여러분은 이 얘기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민수기 5:11-22

곽건용 목사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네가 그들에게 전할 말은 이렇다. 어떤 남편이든지 아내가 잘못을 저질러 남편을 배반하여 13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동침하였는데 아내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고 그 여인이 강요받음 없이 스스로 몸을 더럽혔는데도 증인마저 없고 현장에서 붙들리지도 않았을 경우에 14 남편이 자기 아내가 몸을 더럽혔으므로 화가 나서 아내를 의심하게 되거나 또는 아내가 전혀 몸을 더럽히지 않았는데도 다만 남편이 의처증에 걸려 아내에게 미운 감정이 생기면 15 그 남편은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아내의 몫으로 보릿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 제물에는 기름을 붓거나 향을 얹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미움 때문에 바치는 곡식제물이며 잘못을 상기하여 기억하게 하는 곡식제물이기 때문이다. 16 제사장은 그 여인을 앞으로 나오게 하여 주님 앞에 세운다. 17 제사장은 거룩한 물을 오지그릇에 한 그릇 떠다가 성막 바닥의 흙을 긁어서 그 물에 탄다. 18 제사장은 그 여인을 주 앞에 서게 한 다음 그 여인의 머리채를 풀게 하고 기억하게 하는 곡식제물, 곧 미움 때문에 바치는 곡식제물을 그 여인에게 주어서 들고 있게 하고 제사장 자신은 쓴 물, 곧 저주를 내리는 물을 자기 손에 들고서 19 그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맹세를 시킨다. '어떤 남자와도 동침한 일이 없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이래 그를 배반하여 몸을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를 내리는 이 쓴 물이 네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20 그러나 네가 남편과 함께 사는 동안 그를 배반하여 네 몸을 더럽혔으면, 곧 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동침한 일이 있으면 21 (이 때에 제사장은 그 여인에게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맹세를 하게 한다.) 주님께서는 네 허벅지를 마르게 하고 네 배가 부어오르게 하는 저주를 내려 네 겨레 가운데서 너를 본보기로 삼으실 것이다. 22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이 물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가서 네 배를 부어오르게 하고 네 허벅지를 마르게 할 것이다.’ 이렇게 제사장이 맹세를 시키면 그 여인은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여야 한다(민수기 5:11-22).

단지 의심만으로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널뛰기를 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북미회담이 취소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놀란 가슴이 가라앉기도 전에 남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려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인해 북미정상회담도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추측합니다. 좌우간 극적인 일들이 많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기 때문에 오늘은 시의적절한 설교를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꿔서 본래 하려했던 ‘지겨운 레위기, 재미나게 읽어보다’ 시리즈 마지막 설교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정치상황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기 전에 열심히 기도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레위기를 설교한다면서 지난 세 번은 전체적인 레위기의 신학과 목적에 대해 얘기하느라고 진짜 레위기다운 규율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쉬웠는데 오늘 그런 본문 하나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레위기가 아니라 민수기 5장에 나오는 규율입니다. 이 본문을 고른 이유는 이 규율은 민수기에 들어있긴 하지만 가장 레위기다운 규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규율은 한 남편의 아내가 ‘저질렀을지 모르는’ 불륜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질렀을지 모르는’이라고 말한 것은 그녀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증거나 목격자가 있다면 이런 절차는 필요 없습니다. 이 법은 불륜을 저질렀다는 증거나 목격자는 없지만 남편이 아내의 불륜여부가 ‘의심스러울 때’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13절과 14절은 이 법을 적용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적시합니다. 첫째 조건은 “(한 아내가)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동침하였는데 아내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고 그 여인이 강요받음 없이 스스로 몸을 더럽혔는데도 증인마저 없고 현장에서 붙들리지도 않았을 경우”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딘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규정은 ‘(한 아내가)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동침하였는데’라고 말함으로써 아내의 불륜을 기정사실처럼 말합니다. 다만 아내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어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내의 불륜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강요받음 없이 스스로 몸을 더럽힌 경우’라고 말했으니 강간당한 경우는 여기 해당되지 않습니다. 강간에 관한 규정은 따로 있습니다. 강간당할 때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소리쳤느냐 안 쳤느냐에 따라 처벌을 달리하는 규정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규정은 한 남자의 아내가 강간당하지 않고 불륜을 저질렀을지 모르는데 그녀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고 증인도 없으며 현장에서 붙들리지도 않은 경우에 불륜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는지에 관한 규정이 되겠습니다.

둘째 조건은 14절, “남편이 자기 아내가 몸을 더럽혔으므로 화가 나서 아내를 의심하게 되거나 또는 아내가 전혀 몸을 더럽히지 않았는데도 다만 남편이 의처증에 걸려 아내에게 미운 감정이 생기”는 경우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 역시 아내의 불륜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내가 몸을 더럽히는 경우’가 뭘 가리키는지 불분명합니다. 현장에서 붙들린 경우는 아닐 테니 그런 의심을 받을만한 상황, 예를 들면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다든지 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화가 나서 아내를 의심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단지 남편에게 의처증이 있어서 아내에게 미운 감정이 생긴 경우에 이 규정을 적용하라고 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이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는 아내의 불륜이 의심되지만 증거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든 없든 남편이 아내를 의심해서 미운 감정이 생겼을 때라는 겁니다. 요즘 기준으로는 증거나 목격자가 없을 뿐더러 정황증거도 변변치 않기 때문에 법률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피고인이나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추정원칙은 여기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무죄추정원칙은커녕 이 규율은 불륜이 의심되는 아내를 이미 50% 이상 범죄자취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조건에서 아내는 증인도 없고 현행범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륜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받고 있으며, 둘째 조건에서 아내가 의심받는 이유는 단 하나, 남편의 의심입니다. 무죄추정이나 아내의 권리 옹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거룩한 물에 성막 바닥의 흙을 타서 마시게 하라고?

이런 경우에 남편은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먼저 아내 몫으로 ‘잘못을 상기하여 기억하게 하는’ 곡식제물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어기서도 아내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잘못을 상기하여 기억하게 하는 곡식제물’이라는 제물의 이름에서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당혹스런 대목은 그 다음입니다.

제사장은 여자를 야훼 앞에 세운 다음(어디에 세우라는 얘기일까요? 제단일까요?) 거룩한 물을 오지그릇에 떠다가 성막 바닥의 흙을 긁어서 그 물에 탄 다음에 여자의 머리채를 풀게 하고서 방금 준비한 곡식제물을 여자의 손에 들린 다음에 쓴 물, 곧 저주를 내리는 물을 손에 들고서 다음과 같은 말로써 여자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에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남자와도 동침한 일이 없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이래 그를 배반하여 몸을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를 내리는 이 쓴 물이 네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남편과 함께 사는 동안 그를 배반하여 네 몸을 더럽혔으면, 곧 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동침한 일이 있으면 주님께서는 네 허벅지를 마르게 하고 네 배가 부어오르게 하는 저주를 내려 네 겨레 가운데서 너를 본보기로 삼으실 것이다.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이 물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가서 네 배를 부어오르게 하고 네 허벅지를 마르게 할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해야 한답니다. 이 규율은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하여도 남편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아내에게 죄가 있으면 아내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31절)라는 황당한 말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니까 아내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남편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잘못이 없다는 겁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남편은 무고죄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반면 아내는 어떤 경우에도 불이익을 당합니다. 불륜을 저질렀다면, 다시 말해서 쓴물을 마시고 배가 부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말랐다면 불륜을 저지른 것이므로 사형에 처해졌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남편에게서 불륜을 의심받은 여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오래 전에 본,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가 있습니다(설교 후에 교우 한 분이 이 영화 제목이 뭔지 알려주셨습니다. 제목은 ‘The Stoning of Soraya M’입니다). 이 영화는 중동지역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그리는데 민수기 5장의 얘기와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마을의 한 남자가 아내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버리고 싶은데 명분을 세우려고 그녀에게 불륜의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그는 마을의 장로들을 매수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아내를 유죄로 만들어서 그녀를 땅에 반쯤 묻은 다음에 마을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이는데 놀라운 점은, 불의한 남편이 자기 자식들, 그러니까 아내가 낳은 자식들에게 가장 먼저 돌을 던지게 만든 점입니다. 이 사건은 마침 그 마을을 지나가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할 수 없이 그 마을에서 며칠 지내야 했던 서방세계의 기자에 의해 세상에 밝혀집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민수기 5장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여자의 순결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순결’이니 ‘처녀성’ 등의 말을 사용하기 싫지만 적당한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쓰겠습니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면 남자가 기혼이든 미혼이든 무조건 그 남자와 결혼해야 했습니다. 신명기 22장에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는데 그 여자가 보기 싫어져서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터무니없이 비방하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이 경우 여자의 아버지는 자기 딸이 처녀임을 입증하는 물증을 성읍의 장로에게 가져가서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딸이 처녀임을 입증할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혼하기 전의 딸은 아버지의 재산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딸이 처녀임이 입증되면 아내에게 누명을 씌워 무고죄를 저지른 남편은 여자의 아버지에게 은 일백 세겔을 줘야 하고 또한 여자를 평생 버려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무죄임이 밝혀졌다 해도 불명예는 여자가 뒤집어쓰고 돈은 여자의 아버지가 가져갑니다. 아내를 버리려 했던 남편에게는 고작 벌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고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가 이런 사회였습니다. 극도로 가부장적이고 여자/아내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사회였던 겁니다.

실제로 이 규정을 적용할만한 상황이 창세기 39장에 나옵니다. 요셉을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한 얘기가 그것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고관 보디발 집의 종이 됐는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고대 관습대로라면 요셉은 당연히 그녀의 말을 들어야 했지만 우리의 요셉이 누굽니까, 그는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거절합니다. 그러자 망신을 당한 그녀는 자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치다가 벗겨진 요셉의 옷을 증거물이라고 내놓으면서 요셉이 자기를 강간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자 보디발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요셉을 투옥하고 자기 아내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옷은 증거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구분해야

이 이야기는 민수기 5장의 규정과 비교하면 증거나 목격자가 없는 불륜(미수) 사건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녀의 역할이 바뀌긴 했지만 말입니다. 민수기에서는 불륜을 의심받는 쪽이 여자이고 창세기에서는 그게 남자라는 점만 다릅니다. 이때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믿고 요셉을 죽이거나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아내를 벌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만 양편 모두를 선택하지 않고 대신 요셉을 투옥했습니다. 판단을 미룬 셈입니다.

이에 반해서 민수기 5장의 규율은 증거나 목격자가 없다고 해서 판단을 미루지 않습니다. 이 규율을 판결은 내립니다. 단, 이 경우에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판단을 하느님에게 맡깁니다. 물론 성막 바닥의 흙을 긁어서 거룩한 물에 타서 여자에게 먹이라는 민수기의 방법은 원시적이고 현대인의 상식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인들 생각은 달랐습니다. 좌우간 그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신학에 의거해서 자기들이 내릴 수 없는 판단을 하느님이 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맡긴 것입니다. 판단을 유보하거나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판단하려 했던 겁니다.

이렇듯 범죄여부를 어떻게든 판단하겠다는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기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모두 있습니다. 현대인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러 어두운 면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억압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밝은 면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날 법과 양심에 의해 내려져야 하는 판결이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고려 때문에 판결을 미루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전두환이 그런 경우가 아닙니까. 그가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던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발포명령을 내린 당사자가 단지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여전히 처벌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판단을 내리려 했던 고대인들의 태도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규율에는 따라야 하는 면보다는 비판할 점이 더 많습니다. 단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얘기든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받드는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아내에 대한 의심만으로 그녀를 제사장 앞에 데려가는 것이, 그래서 쓴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과연 옳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행위가 허용됐던 것은 당시 사회의 전통과 풍습과 가치관이 그런 행위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가치관이 통용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이런 규율이 성서에 전해진다고 해서 무조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그대로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겁니다. 이제는 이 규율을 글자 그대로 실천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내의 불륜여부를 판가름하는 전 과정에서 여자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합니다. 여자가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겁니다. 여자는 만일 자기가 부정한 짓을 행했다면 배가 부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마르게 될 거라는 맹세를 해야 하는데 그조차도 자기 입으로 직접 하지 못하고 제사장이 대신 맹세를 해주면 여자는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현대인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레위기 설교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레위기가 전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우리가 그대로 고백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들을 글자 그대로 행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레위기에 전해지는 대부분의 계율들은, 비록 그것들이 하느님의 명령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가 글자 그대로 믿고 실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 계율들이 기반하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과 신앙관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한 다음에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 및 신앙관과 비교한 다음에 그 계율을 오늘날에는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해석’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성서문자주의로 떨어지거나 성서무용론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성서문자주의나 성서무용론은 모두 건강한 신앙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건강한 신앙의 숙적(宿賊)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지겨운 레위기, 재미나게 읽자’ 시리즈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초청설교자를 모십니다. 캐나다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는 김혜란 교수님을 설교자로 모십니다. 김 교수님은 우리 교회 김남중 목사님이 가르치시는 클레어몬트 신학교에 강의하기 위해 오시는데 이번에 우리 교회 강단에 초청했습니다. 좋은 말씀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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