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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향린강단
제 목 : 2018년 8월 12일 "여우 잡는 일과 내가 할 일"
글번호 : 773    조회 : 89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18-08-29 21:43:06   
 
2018년 8월 12일 / 성령강림절 열세 번째 주일 / 평화통일기도주일

여우 잡는 일과 내가 할 일
누가 13:18-21, 31-32

곽건용 목사

1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 그것을 무엇에다가 비길까? 19 그것은 겨자씨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다가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섞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1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서 떠나가십시오. 헤롯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누가 13:18-21, 31-32)

세습이냐 성소수자 배제냐?

오늘은 우리 고국의 개신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 초대형교회의 목사직 세습 문제와 그 교회가 속한 교단의 신학대학에서 동성애를 옹호했다고 해서 학생들을 내쫓은 사건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두 사건을 논란의 여지없이 옳지 않은 일로 볼 겁니다. 따라서 얘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수의 제자들이 진정으로 관심 가져야 할 일이 뭔지, 그게 여우를 잡는 일인지 아니면 다른 일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한국교회 문제 중 하나가 세습이다.... 세습 자체가 성서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고 100~200명 되는 교회가 세습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엄청난 부와 권세를 가진 교회가 왕실처럼 대를 이어 가려는 데 문제가 있다.... 목회자라면 정상에서 자자손손 행복하게 살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주의 종으로서 사명을 다하면 내려와야 한다. 자신도 내려오지 않고 대를 이어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정상에 머물면서 누리는 삶은 목회자 삶이 아니다.”

누가 한 말일까요? 구구절절 옳은 이 말씀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멘!’이 절로 나오지 않습니까. 아들 김하나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한 명성교회 김삼환이 한 말입니다. 다만 시간 차이가 좀 있습니다. 김삼환은 이 말을 2001년에 했으니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물론 누구나 자기가 말한 대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결코 중대한 ‘변신’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재판국은 지난 7일 8:7로 아버지 김삼환의 담임목사직을 세습한 명성교회 김하나의 담임목사 청빙절차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몇 주 전에는 한 신학대학 전 총장인 고세진이란 사람이 그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예수도 하느님의 일을 승계했다면서 “그래, 우리 세습이다. 어쩌라고?”라고 당당하게 외쳤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명성교회 측은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 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갑니다. 하긴 요즘 대한민국의 대법원이 그 동안 저지른 짓을 보니까 일개 교단의 재판국이야 오죽 했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교회세습’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담임목사직 세습’을 가리킵니다. 이런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1990년대 말에 벌어진 예장 합동 측 충현교회의 세습 때부터 크게 부각됐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어떤 단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세습을 한 교회가 140여개라고 합니다. 요즘은 개 교회 담임목사직뿐 아니라 교회 관련기관까지 세습의 범위가 넓어졌고 방법도 사위세습, 교차세습(바꿔치기), 지 교회세습(지 교회를 세워서 세습하는 것), 징검다리세습(한번 걸러서 세습하는 것) 등 다양해졌습니다. 세습하는 교회들은 대개 공정한 청빙절차를 거치지 않지만 명성교회처럼 형식적으로는 절차를 거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세습의 원인은 황금만능주의?

명성교회 사태 이후에 교계언론 뿐 아니라 사회언론도 적지 않게 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본 기사들과 주장들은 세습의 원인을 황금만능주의,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돈의 신 ‘맘몬’의 우상을 섬기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 저도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믿는 신은 하느님이 아니라 돈의 신입니다. 말로는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돈이 수단이기를 넘어서서 목적이 된지 오래입니다. 이제 돈은 목적 그 자체가 됐습니다. 그것도 유일한 목적이지요. 교회는 예수의 하느님나라 메시지가 선포되고 그것이 실천되는 곳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것이 돈을 쌓는 데 방해가 된다면(실제로 방해가 됩니다) 교회는 그것을 얼마든지 헌신짝처럼 내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습의 원인을 돈 만능주의에서 찾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답이 주는 주장을 찾기가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교회는 가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황금만능주의를 버리고 스스로 가난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 주장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가난 그 자체도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가난은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놓이게 되는 상황입니다. 가난 그 자체가 하느님나라 운동의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여러 번 한 얘기지만 한 번 더 하겠습니다. 1987년에 제가 서울에서 일하던 향린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전까지 교회는 좁고 답답한 명동을 떠나 다른 곳으로 교회를 옮기려고 몇 억의 건축헌금을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거액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담임목사로 고 홍근수 목사님이 오신 다음 교회 이전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쌓아둔 건축헌금을 어떻게 쓸지 논의했는데 결론은 그 돈을 가난한 교회들에 나눠주기로 내려졌습니다. 저는 당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말이 그렇지 그 돈을 모두 가난한 농어촌과 달동네 교회들에 나눠주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그걸 하는 걸 보고 과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목사와 교인들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문제가 세습 문제보다 덜 중요해서 이렇게 침묵하나?

한국 개신교계가 온통 세습 문제로 떠들썩할 때 한쪽에서 조용히 진행된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성소수자들을 신학교에서 내쫓는 일입니다. 이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일일이 다 얘기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지난 5월에 장신대 학생 다섯 명이 LGBTQ를 옹호하는 뜻에서 무지개 색 옷을 입고 교내채플에 참석했습니다. 학교 측은 이를 교단의 방침을 어기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행위이면서 동시네 수업방해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징계했습니다. 징계위원장은 제 동창인 홍 모 교수였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자기들이 믿는 하느님은 성정체성을 갖고 사람을 판단하는 분이 아니라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학교는 정학 6개월 1명, 근신·사회봉사 3명, 엄중 경고 1명의 징계를 내렸고 이에 한 학생은 자퇴서를 제출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학교 측은 이 일을 계기로 임성빈 총장이 공개서신은 썼습니다. 그는 “그동안 관련 보직교수들과 지도교수들이 최선을 다해 학생 지도에 전념해 왔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 저는 신학 교육의 최종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깊게 통감”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학교는 “학생들을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구현해 갈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로서 구비케 하는 본 대학 본연의 목적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책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면서 “그러나 장신 공동체의 노력과는 달리 장신대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왜곡된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작위적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깊은 유감을” 표했습니다.

아무리 한 언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나라’라는 말이 이렇게 사용됐다는 데 분노를 누를 수 없습니다. 이후로 학교는 신학교 최초로 신입생에게 반동성애 서약을 받기로 했을 뿐 아니라 동성애 반대를 밝히는 소책자까지 발간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 교단 장로들이 7월 초에 열린 장로수련회에서 무지개 색 옷 사건을 문제 삼으며 임성빈 총장에게 동성애 반대에 적극적이지 않은 교수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보통은 교회에서 장로들이 돈줄을 쥐고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돈이 최고라지만 장로들이 신학교 총장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꼴은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학교 측은 부리나케 자기들은 교단의 결의를 따르고 있다는 입장문을 써서 장로수련회에 보냈다고 합니다. 교단의 결의란 지난해 9월 예장 통합 측 총회에서 동성애자 당사자와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은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고 교회에서 직분을 받을 수 없으며 목회자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일을 가리킵니다. 학교 측은 이런 결의를 따르고 있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장로들을 설득한 겁니다. 한 교단의 신학이 장로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걸 목격하면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하긴 학교 측이 반대의 입장을 내세우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일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벌어졌습니다. 저는 이 사건들을 보면서 참으로 놀랐습니다. 세습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데 놀랐습니다. 둘 중 어느 편이 더 크고 중대한 사건입니까? 어느 편이 더 큰 문제입니까? 담임목사직 세습입니까, 아니면 한 개신교 교단 전체에서 벌어진 교단 차원의 성소수자 차별과 배제입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이 둘은 무관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사안의 경중을 따지면 단연 후자가 더 무겁고 중대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습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높고 우렁찬데 반해서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는 목청을 높이는 사람이 적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들은 명성교회의 세습에 대해서 ‘격문’이란 이름으로 격정적인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한 그들 중에 단 한명도 무지개 옷 사건 학생들에 대한 학교 측의 징계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들 중에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교수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아는 교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2차 대전 시기에 독일의 마틴 니묄러 목사가 쓴 유명한 시가 떠올랐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예수님에게 여우는 일차적 관심 대상이 아니다

좀 신랄하게 말하면 저항할만한 이슈에 대해서만, 저항해도 괜찮은 문제에만 저항하는 것, 그것은 저항을 통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이루고자 하는 게 아니라 생색만 내는 행위입니다. 불의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불의한 현실에 대해 ‘나는 저항했노라.’는 모양만 내려는 태도일 따름입니다. 저는 장신대와 예장 통합 교단에서 벌어지는 세습과 성소수자 배제에 대한 이른바 지도자들의 태도가 꼭 그런 것 같아 슬프고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세상에 자기 학생들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내쫓기는데 어떻게 스승이란 사람들이 침묵할 수 있나 말입니다. 저는 그 학교에서 기독교윤리를 가르치는 교수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래갖고 어떻게 기독교윤리를 가르치겠냐고 말입니다. 신약성서와 예수님을 가르치는 교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야 어떻게 예수님과 그분이 외쳤던 하느님나라를 가르치겠습니까.

정말 세습을 근절하고 싶다면, 또한 성소수자들을 비롯해서 차별받고 소외된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매와 형제로 지내고 싶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헤롯왕이 당신을 죽이려 하니 얼른 이곳을 떠나라고 권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성서에서 3이란 숫자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과 이 말씀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앞에 말씀의 의미는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는데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악과 싸우는 예수님의 방식은 일차적으로 헤롯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이요 그들에게서 귀신을 내쫓는 일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헤롯에게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보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병’은 생물학적 질병만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사회현상이었던 겁니다. 그것은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의 상징입니다. 요즘 건강과 의료접근에 있어서 불평등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사실 예수님 시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그것이 따로 사회현상으로, 사회문제로 부각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한편 ‘귀신이 들렸다’는 말에는 물론 주술적 의미도 들어있지만 동시에 지배자의 불의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여우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고 하셨던 일은 불의한 체제 속에서 병들어 신음하는 민중의 병을 고치는 일이며 지배자의 불의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있는 민중을 해방시켜 자유와 평화, 평등과 해방, 형제자매애라는 가치관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분명 전복적이었습니다. 거룩한 척 하는 이들에게서 ‘위선’을 본 예수의 시선은 가장 천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서 ‘거룩함’을 보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남의 눈에서 ‘티끌’을 볼 때 예수님은 그들의 가슴에 있는 ‘눈물’을 보셨다는 점에서도 예수님의 시선은 역시 전복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든다는 이유로 정의롭지 않은 방법을 쓸 때 예수님은 하느님나라의 주인이 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에게서 나쁜 귀신을 내쫓음으로써 그들 스스로 주인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 무덤의 비석에는 고 신영복 교수의 명필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글귀를 이렇게 패러디해봅니다. “하느님나라를 이루는 원동력은 사회적 질병을 치유 받고 불의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의 포로에서 해방된 민중들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세습에 대해서도 목사들과 교수들이 백날 ‘격문’을 외쳐봐야 소용없습니다. 깨어난 교인들이 ‘성직자’를 자처하고 스스로 ‘하느님의 종’입네 하는 자들의 거짓 권위를 깨뜨리고 예수의 공동체의 주인으로 일어서지 않으면 세습이든 성소수자 탄압이든 절대 근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여우가 무슨 짓을 하든 그것보다는 민중의 병을 고치고 그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셨던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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