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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향린강단
제 목 : 2018년 8월 26일 "심지 않고 거두고 뿌리지 않고 모으는 하느님?"
글번호 : 774    조회 : 114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18-08-29 21:44:01   
 
2018년 8월 26일 / 성령강림절 열다섯 번째 주일

심지 않고 거두고 뿌리지 않고 모으는 하느님? 1
마태 25:14-30 누가 19:11-27

곽건용 목사

14 “또 하늘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15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21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22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24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25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27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9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30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마태 25:14-30)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덧붙여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이 비유를 드신 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데다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날 때에 13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다가 열 므나를 주고서는 '내가 올 때까지 이것으로 장사를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14 그런데 그의 시민들은 그를 미워하므로 그 나라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맡긴 종들을 불러오게 하여 각각 얼마나 벌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16 첫째 종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벌었습니다.' 17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한 종아, 잘했다.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하여라.' 18 둘째 종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벌었습니다.' 19 주인이 이 종에게도 말하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하여라.' 20 또 다른 한 종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보십시오. 주인의 한 므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은 야무진 분이라서 맡기지 않은 것을 찾아가시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시므로 나는 주인님을 무서워하여 이렇게 하였습니다.' 22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하겠다. 너는 내가 야무진 사람이라서 맡기지 않은 것을 찾아가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 알고 있었지?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화를 은행에 예금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라면 내가 돌아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것을 찾았을 것이다.' 24 그리고 그는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서 열 므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5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님, 그는 열 므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였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나의 이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누가 19:11-27)

잊히지 않는 설교?

저는 이 비유를 갖고 여러 번 설교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들은 적 있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설교라는 것은 듣고 얼른 잊어버리는 게 모두를 위해 좋지만 그 중에는 잊히지 않는 설교가 있게 마련입니다. 일전에 제 친구 목사가 집 정리하다가 안병무 선생님 설교 테이프가 나오기에 들었답니다. 그 설교는 자기가 평생 들은 중 최고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에 제 얘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 선생님이 설교에서 제 얘기 하셨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그 설교를 들어봐야겠습니다. 분명 저도 그 설교를 들었을 텐데 이렇게 기억나지 않으니 설교라는 게 본래 잘 잊어버리게 되어 있는 건 맞나 봅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의 것만도 긴데 누가복음의 것도 읽었습니다. 평소에 읽은 본문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지만 꼭 필요해서 두 본문을 모두 읽었습니다. 마태가 전하는 비유는 ‘달란트 비유’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누가의 그것은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마태의 비유는 상당히 길지만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겼는데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줬습니다. 그랬더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그걸로 장사를 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벌었는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는 겁니다. 주인이 돌아와 정산을 했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아 곱절을 만든 종들이 으스대듯 자기들이 거둔 성과를 자랑하듯 보고하니 주인은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라고 대꾸하고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종에게 주라고 했다는 겁니다.

누가가 전한 비유는 마태의 것과 다르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것은 마태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이 둘이 과연 같은 비유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세세한 면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본 구조가 일치하기 때문에 같은 비유로 보는 견해가 대세입니다.

우선 누가는 여행을 떠난 ‘어떤 사람’을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라고 특정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비교하면 그의 지위를 드러낸 겁니다. 또한 누가는 그가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났다’고 말함으로써 여행의 목적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열 사람의 종에게 각각 한 므나씩 주면서 그걸로 장사하라고 명했습니다. 세 사람의 종에게 각각 다른 액수의 달란트를 줬다고 말하는 마태와는 여기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달란트’가 비현실적으로 큰 액수인 반면 ‘므나’는 그보다 훨씬 작은 단위의 돈이므로 돈의 단위만 놓고 보면 누가의 비유가 더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들은 대단한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둘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누가가 마태에는 없는, 왕위를 받으러 여행을 간 그 귀족을 시민들은 원치 않았다고 얘기를 집어넣었다는 대목입니다. 시민들은 “그(귀족)를 미워하므로 그 나라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종은 주인에게 받은 한 므나를 땅에 묻지 않고 수건에 싸서 보관했다고 했고 주인은 그 은화를 은행에 예금하지 않았다고 꾸짖음으로써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고 꾸중한 마태와 소소한 차이를 보이지만 이 정도는 대단한 차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이 귀족은 왕위를 얻으러 간 사람답게 이익을 많이 남긴 종들에게 돈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줬다고 했고 마지막에 “내가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나의 이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라고 명령했다고 했습니다. 누가의 비유는 마태의 그것과 비교하면 명백하게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소 언행은 전통적인 해석과 어울리지 않는데....

오랫동안 이 비유는,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달란트, 곧 재능을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그 재능을 잘 살려서 좋은 열매를 맺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 재능을 썩힌다, 재능을 잘 살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더 큰 재능을 주시지만 그걸 썩히는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비유에서는 돈의 단위인 ‘달란트’가 전통적 해석에서는 추상명사인 ‘재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래 전부터 비유의 메시지가 과연 그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말 예수께서 믿는 하느님은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고 없는 사람에게는 가진 것조차 빼앗아 더 가진 사람에게 주시는 분인가 말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 죄인들과 세리, 여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신 예수님의 삶과는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달리 해석할 실마리를 찾지 못해 오랫동안 안타까워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9월경 한 서점에서 <전복적 이야기로서의 비유 Parables as Subversive Speech>라는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고 즉석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처음 들어본 이름인 윌리엄 허조그 2세(William Herzog II)가 저자였습니다. 저는 저자가 그 책에서 달란트 비유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해석을 한 걸 보고 즉각 매료됐습니다. 그래서 과연 그의 해석을 다른 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봤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더군요. 그래서 저자의 해석을 여러 번 읽어봤는데 제 생각에는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해석에 기반을 둔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가 1994년 아니면 1995년이었는데 우리 교인들 대부분은 그 설교에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도 공감했습니다. 한 교인은 그 설교를 가리켜 ‘이것이야 말로 향린교회적인 설교’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우리 교회에서도 같은 설교를 ‘재탕’했고 또 몇 교회에서도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듣는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좌우간 이 설교는 제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설교입니다.

오늘 또 이 비유를 읽은 까닭은 이 비유에 대한 누군가의 설교가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가 제가 한 것처럼 비유를 해석해서 설교한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소위 ‘정통’을 자처하는 목사와 신학자들이 그 해석을 잘못됐다면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전통적인 해석, 그러니까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재능을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그 재능을 잘 살려서 좋은 열매를 맺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 재능을 썩힌다, 재능을 잘 살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더 큰 재능을 주시지만 그걸 썩히는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해석이 옳다는 겁니다. 새롭게 해석한다는 핑계로 잘못된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점잖게 타이르기까지 하더군요. 그래서 그들의 글을 세심하게 읽어봤는데 거기에는 왜 그렇게 전통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텍스트 상의 근거는 없었습니다. 단지 오랫동안 그렇게 해석해왔으니까 옳다, 이른바 새로운 해석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맞지 않는 자본주의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뒤집어씌운 것이란 주장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전에 했던 것보다 좀 더 상세히 비유를 읽고 가급적이면 텍스트로 하여금 말하게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모든 텍스트의 해석에는 해석자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비유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도 예수님은 잘난 사람들보다는 못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가지셨다고 믿는 제 신학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유의 전통적 해석에 의문을 갖게 됐고 다른 해석을 추구하다가 윌리엄 허조그의 해석을 만나게 된 겁니다.

비유를 해석하는 세 가지 열쇠

저는 이 비유를 해석하는 열쇠는 다음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비유가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반영하고 있는가 여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대체로 농부, 어부, 여인들의 평범한 삶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비유는 씨 뿌리는 얘기, 어부가 그물을 던져 생선을 잡는 얘기, 여인이 반죽을 하는 얘기 등 그들이 살아가는 실생활에서 소재를 갖고 왔고 그것을 반영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당시의 사회경제구조와 제도 및 관습을 반영하는 비유도 있습니다. 그런 비유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사회경제구조와 관습을 알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러면 당시에 벌어진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비유도 있을까요? 일회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비유도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거의 없습니다. 있다면 누가가 전하는 므나의 비유가 유일합니다. 그것도 같은 비유는 전하는 마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부분을 삭제했고 오로지 누가만 전하고 있는데,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났다는 대목과 이문을 남긴 종들에게 고을을 상으로 줬다는 대목, 그리고 돌아와서 자기가 왕이 되는 걸 원치 않은 자들을 몰살했다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얘기만 갖고는 이 귀족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비유를 들은 청중들은 그가 누군지 당장 알았습니다. 그는 그 시대 유대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헤롯 대왕​이 넷째 아내​인 말타케​를 통해 얻은 아들 헤롯 아르켈라오스입니다. 예수시대에 실재했던 인물이었던 겁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예수가 부모와 함께 이집트​로 피신해 내려가 있는 동안​ 유대 지방​의 왕​이 됐습니다. 예수님 가족이 이집트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의 포학​한 통치​를 피해서 그​의 관할구역 밖인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올라가서 살았다고 마태는 전하고 있습니다(2:22, 23). 그래서 예수님 이름 앞에 ‘나사렛’이란 지명이 붙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게 만든 인물이 바로 아르켈라오스였던 겁니다. 그의 아버지​ 헤롯대왕​은 그​에게 유대​와 사마리아 및 이두매​를 다스리는 통치권​을 물려줬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헤롯​이 죽자 그는 자신​의 통치권​을 더 확고히 하려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갔습니다. 뇌물을 주러 갔던 것이죠. 이때 그의 형제들과 유대인 대표들이 이를 막으려고 로마로 갔지만 막지 못했습니다. 아르켈라오스​는 매우 잔인​한 통치자​였고 유대인​들​에게 평판​이 나빴습니다. 그​는 폭동​을 진압​하다가 성전 경내​에서 3천 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적​도 있었고 대제사장​을 두 차례 면직​시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의 이혼과 재혼​은 유대인​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그들이 아우구스투스​에게 이에 대해서 불평​하자 마침내 조사​가 행해져서 통치 ​9​년 만에 그는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얘기는 모두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나옵니다.

한국 사람에게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자’라고 하면 금방 ‘이완용’이 나오고 ‘바보’ 하면 ‘노무현’이 바로 나오듯이 유대인들에게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여행한 귀족’ 하면 당장 아르켈라오스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 기는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는 잔인한 통치자로 비난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누가가 이름을 들지 않았지만 비유를 듣는 사람은 누구 얘기를 하는지 알아챘습니다. 마태는 그 점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어떤 사람’이라고 그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처리했지만 말입니다.

‘주인’은 하느님을 가리킬까?

왜 그랬을까요? 마태가 본래 비유에는 있었던 대목을 삭제했을까요, 아니면 누가가 본래는 없었던 내용을 추가했을까요? 마태가 예수님이 실제로 말씀한 비유에 가깝다면 누가는 본래 비유에는 없던 아르켈라오스 얘기를 덧입힌 셈이고 그 반대라면 마태는 본래 있던 아르켈라오스 얘기를 덜어낸 셈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논란이 분분한데 저는 이 점이 비유를 푸는 두 번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곧 종들에게 돈을 맡기고 여행간 사람이 ‘하느님’을 가리키느냐 여부가 그것입니다. 이 점은 비유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아버지’나 ‘주인’은 대체로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에서도 과연 그런가 하는 점입니다. ‘대체로’ 그렇다는 것과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누가가 전하는 비유와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청중은 그가 아르켈라오스인 줄 아는데 예수님이 그런 자를 들어 하느님이라고 했겠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를 고려하지 않고 마태만 놓고 주인이 곧 하느님을 가리키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을 가리켜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속된 말로 하면 ‘날로 먹는 사람’이란 뜻 아닙니까. 거두려면 심어야 하고 모으려면 뿌려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이 사람은 심지 않고도 거두고 뿌리지 않고도 모은다니,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착취자’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물론 관건은 세 번째 종이 주인을 가리켜 한 이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그 얘기는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비유를 푸는 마지막 열쇠는 왜 세 번째 종은 한 달란트를 땅에 숨겨뒀냐는 겁니다. 그는 왜 그 돈으로 장사도 안 했고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기지도 않았을까요? 그는 무슨 생각으로 돈을 땅에 묻었느냐 말입니다. 마태와 누가가 전하는 비유 그 어디를 살펴봐도 직접적으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해석자의 몫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겠습니다. 오늘은 비유를 해석하는 데 꼭 고려해야 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답은 다음주일에 찾아보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이 노동절 연휴라서 여행을 계획하는 교우들이 있을 겁니다. 계획을 변경하지 말고 잘 다녀오십시오. 다음 주일 설교 동영상을 만들지 말지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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