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Member  |  목사님께    
 
 
 
 
 
 
 
 
 
 
Total
Today
  2007년 향린강단
제 목 : 2018년 9월 23일 "그는 왜 나서야 했나?" (예레미야 2)
글번호 : 777    조회 : 15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18-12-01 15:38:52   
 
2018년 9월 23일 / 성령강림절 열아홉 번째 주일
예레미야 2

그는 왜 나서야 했나?
예레미야 8:1-13

곽건용 목사

1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유다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예언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들의 무덤에서 꺼내다가, 2 그들이 좋아하고 노예처럼 섬기고 뒤쫓아 다니고, 뜻을 물어 보면서 찾아다니고 숭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천체 앞에 뿌릴 것이다. 그래도 그 뼈들을 모아다가 묻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니, 그것들은 이제 땅바닥에서 거름이 되고 말 것이다. 3 그리고 이 악한 백성 가운데서 남아 있는 자들은, 내가 쫓아 보낸 여러 유배지에서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4 "너는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누구나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않겠느냐? 누구나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느냐? 5 그런데도 예루살렘 백성은, 왜 늘 떠나가기만 하고, 거짓된 것에 사로잡혀서 돌아오기를 거절하느냐? 6 내가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았으나, 그들은 진실한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일을 하다니!' 하고 자책은 하면서도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그릇된 길로 갔다. 마치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마들처럼 떠나갔다. 7 하늘을 나는 학도 제 철을 알고, 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도 저마다 돌아올 때를 지키는데, 내 백성은 주의 법규를 알지 못한다. 8 너희가 어떻게 '우리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요,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안다' 하고 말할 수가 있느냐? 사실은 서기관들의 거짓된 붓이 율법을 거짓말로 바꾸어 놓았다. 9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공포에 떨며 붙잡혀 갈 것이다. 그들이 주의 말을 거절하였으니, 이제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다고 하겠느냐?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들을 다른 남자들에게 넘겨주고, 그들의 밭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겠다." "힘 있는 자든 힘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을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 예언자와 제사장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11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그들은 '괜찮다! 괜찮다!' 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 12 그들이 그렇게 역겨운 일들을 하고도, 부끄러워하기라도 하였느냐? 천만에!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쓰러져서 시체 더미를 이룰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내릴 때에, 그들이 모두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13 나 주의 말이다. 그들이 거둘 것을 내가 말끔히 거두어 치우리니, 포도덩굴에 포도송이도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도 없고, 잎까지 모두 시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준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예레미야 8:1-13)

예레미야서의 시대 배경

예언자 예레미야는 매우 용감했지만 동시에 참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예언자 치고 꽃길만 걸으며 희희낙락했던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그는 다른 예언자들보다 더 비참하고 더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고문을 당했고 투옥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동족에게 전해야 했던 하느님의 메시지 내용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조국이 이방나라에 의해 피할 수 없이 멸망당할 운명에 놓였다는 메시지를 동족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회개해도 소용없고 기도도 하지 말하는 메시지는 동족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는 조국 유다가 하느님과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거듭 외쳐야 했습니다.

오늘은 예레미야가 예언활동을 했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짧은 시간에 긴 역사를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개략적이나마 그 시대상황을 모른다면 예레미야 예언자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전한 메시지가 어떤 성격과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 므나세 통치 말기에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아나돗이란 곳에서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나서 므나세 뒤를 이은 요시야 왕 시기에 예언자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략 기원전 626년경입니다. 그가 예언자로 활동하게 된 것은 요시야 왕의 개혁 작업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겠습니다. 요시야의 제위기간은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제국(empire)인 아시리아 제국의 쇠퇴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유다라는 나라는 아시리아가 융성했을 때는 꼼짝 못하고 봉신국(封臣國)이었다가 아시리아가 쇠퇴하자 독립적인 자주 국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혁 작업에 나서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개혁 작업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스라엘’이라는 부르는 나라는 형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별개의 나라였던 유다와 이스라엘을 다윗이 하나로 통일해서 세운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통일국가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북왕국만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니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이 두 나라는 통일되기 전부터 서로 다른 종교전통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이 종교전통을 ‘신학전통’ 또는 ‘국가이데올로기’라고 불러도 무방한데 당시에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 전통’이라고 부르는 북왕국의 종교전통, 또는 국가이데올로기는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야훼 하느님과 맺은 언약(covenant)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만일’(if)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하느님이 준 계명을 지킨다면 하느님도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곧 일정한 ‘조건’이 붙어 있는(conditional) 언약이었습니다. 반면 남왕국 유다의 신학전통은 ‘다윗 전통’이라고 부르는데, 하느님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세운 성전에 거하시며 예루살렘을 외적으로부터 지켜주시며 다윗의 후예가 영원히 왕좌에 앉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조건’이 붙어있지 않은 무조건적인 언약인 겁니다. 이렇듯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신학전통, 또는 국가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고 그것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이 차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유다의 위기시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 작업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잠시 한 나라로 통합됐지만 솔로몬이 죽은 후 곧바로 다시 갈라져서 2백여 년 동안 때론 서로 돕기도 하고 때론 대립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지내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은 721년에, 남왕국 유다는 586년에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 제국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벌어진 다양한 일들을 얘기할 여유는 없지만 예레미야와 관련해서 꼭 짚어야 할 사건이 있는데 요시야 왕의 개혁 작업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시야는 천운(天運)을 타고난 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선왕 므나세와 요람 시대에 정점에 달했던 아시리아 제국이 그의 시대에 들어서자 갑자기 쇠퇴의 길을 걸음으로써 가나안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요시야는 제도를 정비하고 개혁 작업을 벌였는데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다가 거기서 하느님의 율법책을 발견한 일이었습니다. 요시야는 그 율법책을 읽고 깜짝 놀라며 옷을 찢고 애통해 했다고 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자기 선왕들은 오랫동안 하느님의 계명을 어겨도 보통 어긴 게 아니었고 그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됐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는 율법책이 명하는 것을 실행하는 것으로 개혁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해와 별들을 섬기는 이교의 종교행위를 모두 철저하게 금지하고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파괴했으며 예루살렘 이외의 모든 성전들을 폐쇄하고 거기서 일하는 제사장들을 모두 예루살렘 성전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모든 제사와 종교행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집중했던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업은 그가 므깃도에서 벌어진 이집트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그만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개혁 작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공감하고 동의했다고 보입니다. 그는 요시야의 개혁 작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서 예언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그를 선택하셨다고 했지만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계기는 요시야 개혁의 실패였습니다. 이는 그가 전한 메시지에서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혁명은 쉽게 말하면 그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질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집어엎는 일인 반면, 개혁은 사회의 기본질서는 건드리지 않고 그 위에 세워져 있는 구조와 제도를 바꾸는 일입니다. 재작년과 작년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는 ‘촛불혁명’이라고 부르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그건 맞는 이름은 아닙니다. 한국사회의 기본질서를 바꾸려는 시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요시야 왕이 한 일은 ‘혁명’은 아니었고 ‘개혁’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학자들도 그렇게 부릅니다. 그가 한 일이 당시 유다의 운명을 바꾸기에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나마 그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실패한’ 개혁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게 바로 이때였고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를 얘기하려 합니다. 한 가지는 개혁의 내용 중에 예레미야가 집중적으로 비판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예레미야조차 간과한 내용입니다.

요시야 개혁에 대한 예레미야의 비판

첫째는 예레미야도 지적하고 비판한 내용으로서 요시야 개혁의 ‘내용’이 불충분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앞에서 저는 북왕국의 신학전통은 ‘조건부’로서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복을 받고 융성한다는 모세 전통이고, 남왕국의 신학전통은 하느님이 무조건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을 지켜주신다는 다윗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성격이 상당히 다른 두 전통은 상대편 나라에서는 별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왕국에서는 북왕국의 조건부 모세 전통이 별 역할을 하지 못했고 북왕국에서는 남왕국의 다윗 전통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구약성서를 피상적으로만 읽으면 두 개의 신학전통을 두 나라가 모두가 균형 있게 지켰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두 나라는 상대방 나라의 신학전통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걸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이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읽고 요시야 왕은 애통하며 자기 옷을 찢었다고 한 데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요시야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을 시켜서 율법책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서 하느님의 뜻을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요?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 하느님의 계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걸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에이, 그럴 리가 있다. 어떻게 유다의 왕이 율법을 몰라? 그게 말이 돼?’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겠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많은 구약학자들도 요시야가 이때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의 내용을 처음 접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22-23장은 율법책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됐다고 말하지만 학자들은 그것을 율법책이 요시야 개혁에 끼친 영향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실제 상황은 기원전 721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모세신학 전통을 수호하던 일군의 예언자 또는 제사장들이 남쪽으로 피신해 내려왔을 때 그 율법책을 갖고 내려왔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요시야 왕은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그 책을 전달받고 왜 유다에 위기가 닥쳐왔는지를 깨닫게 됐다는 겁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제사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나안과 아시리아에서 들어온 우상들과 이교적 관습 및 제사제도를 금했고 제사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예루살렘 이외의 모든 야훼 성소를 폐지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율법책이 전하는 계명의 다른 한 측면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대표되는 약자들을 환대하고 보호하라는 윤리적 계명이었습니다. 모세신학 전통에서 하느님은 “너희들도 이집트에서는 나그네였다.”라고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상기시키시며 동족 가운데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보호하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은 모세 전통의 중심 기둥입니다. 그런데 요시야의 개혁은 유다 땅에서 이방신들을 몰아내는 데 집중한 나머지 그것은 성공했지만 동전의 반대 면인 약자를 환대하고 보호하라는 계명을 제도화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모세 전통에서 약자 보호는 조건부 계명입니다. 만일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으면 하느님의 인도와 축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두 이야기의 합류

예레미야는 요시야 개혁에서 이 점을 문제 삼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 유명한 7장에서 성전에 제사하러 오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쳤던 겁니다.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말한다. 너희의 모든 생활과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이곳에서 너희와 함께 머물러 살겠다.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하고 속이는 말을 너희는 의지하지 말아라.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조건문!)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

이 설교는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의 기본 성격은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설교입니다. 그는 인용문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너희 조상에서 영원무궁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여기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재천명합니다. 이 약속은 다윗 신학전통을 담고 있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바로 앞에서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을 제시라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은 남왕국 유다의 신학전통에서는 없는 것으로서 북왕국의 모세 신학전통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왕국 예언자 예레미야는 자기들의 전통적 신학전통에다가 북왕국의 신학전통을 접목시켰던 겁니다. ‘예루살렘 불패의 신화’에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철저하지 못한 개혁은 커다란 후유증을 남깁니다. 개혁에 대한 반작용의 힘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그렇게 죽지 않고 개혁 작업을 이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만약 그의 뒤를 이러 왕위에 오른 왕들이 선왕의 작업을 승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겠습니다. 다음 주일은 전교인 수련회가 열리므로 예레미야에 대한 설교는 그 다음 주일에 이어가겠습니다. ♣
 


Total : 552   (Page 1/56)
552 2018년 11월 25일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진짜 하느님인가?" (가.. goodneighborhood 12/01 33
551 2018년 11월 18일 "감사절 메시지) goodneighborhood 12/01 19
550 2018년 11월 11일 "심장에 새겨진 약속" (예레미야 5) goodneighborhood 12/01 18
549 2018년 11월 4일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거야" goodneighborhood 12/01 19
548 2018년 10월 7일 "주께서 저를 속이시다니요!" (예레미야 3) goodneighborhood 12/01 13
547 2018년 9월 23일 "그는 왜 나서야 했나?" (예레미야 2) goodneighborhood 12/01 15
546 2018년 9월 16일 "뽑고 허물고 세우고 심어라?"(예레미야 1) goodneighborhood 09/20 98
545 2018년 9월 2일 "심지 않고 거두고 뿌리지 않고 모으는 하느님 .. goodneighborhood 09/04 108
544 2018년 8월 26일 "심지 않고 거두고 뿌리지 않고 모으는 하느님.. goodneighborhood 08/29 149
543 2018년 8월 12일 "여우 잡는 일과 내가 할 일" goodneighborhood 08/29 108
1 2 3 4 5 6 7 8 9 10 [Next 10 ]

   
  

Copyright (C) 2018 향린교회 (Good Neighborhood Church) All Rights Reserved
 540 S. Commonwealth Ave. Los Angeles, CA 90020 Tel : 213-559-7635   E-Mail : kwakgunyong@goodneighborhood.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