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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향린강단
제 목 : 2018년 11월 4일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거야"
글번호 : 779    조회 : 18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18-12-01 15:41:29   
 
2018년 11월 4일 / 성령강림절 스물다섯 번째 주일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거야
마가 4:26-32

곽건용 목사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냅니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댑니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요?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요?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습니다.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됩니다.” (마가 4:26-32)

재작년과는 다른 분위기의 조국

재작년에도 비슷한 때 고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마침 촛불집회가 시작되던 무렵이었으므로 두 주간 머무는 동안 한국사회가 격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를 안고 긴 비행시간 끝에 공항에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동대문 근처 창신동의 초원교회에서 목회하는 동기 최윤태 목사의 도움으로 그 교회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수 있어서 어디든 편리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도착 이틀 후가 주일이어서 미국 오기 전에 8년 가까이 전도사, 준목, 부목사로 일했던 서울 향린교회를 방문해서 설교했습니다. 약 10년 만에 방문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교회와 그 주변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소규모의 음식점과 찻집, 작명소, 철학관 등이 있던 주변ㅡ이 작은 건물들을 개발업자들이 사들여 고층빌딩들을 세웠습니다. 아마 법규에 그렇게 되어 있는지 건물들 사이에 나무들도 심어놓고 공원 비슷하게 만들어놔서 그런지 주변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해졌더군요. 하지만 주변이 그렇게 정비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겼고 아팠을까 생각하니 그 쾌적함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곳은 제게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인데 재개발과 더불어 그 추억들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아 적지 않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경험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설교에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거기서 생활한 8년간 느끼고 배운 것을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회고록 같은 것인데 그 안에도 전할 만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겁니다. 현장감을 살려보겠다고 원고도 준비하지 않고 하려는 얘기를 머릿속에 넣어가지고 주일 아침에 교회로 향하는데 아내가 왜 빈손으로 가냐고, 설교문은 어디 있냐고 묻더군요. 저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고 나섰습니다. 돌아보니 제 생애에서 두 번째로 원고 없이 한 설교였습니다.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듯, 하려는 얘기를 다 하지는 못했습니다. 꼭 하려고 했던 얘기를 잊어버리기도 했고 시간의 제약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교 동영상은 한 교우께서 우리 교인대화방에 올리셨으니 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그 교회를 떠난 지 25년이 지났고 거기서 마지막으로 설교한지도 10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아는 분들은 10% 정도에 불과했고 그분들은 대개는 오래된, 연세 높은 분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제가 모르는 교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한 얘기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기에 얼마나 공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두 어르신이,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신 안병무 선생님과 홍근수 목사님도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참으로 많을 걸 배웠습니다. 제가 일하는 동안 교회는 분열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리고 그것이 정리된 후에 홍 목사님이 보여주신 모습에서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고 진심으로 더욱 그분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이 자리에서 하지 않겠습니다. 그 날 설교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사실 지금 그 교회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분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근에 몇 명의 장로들을 포함해서 여러 명의 교우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제가 거기 있었을 때는 교회의 신학과 노선, 방향과 관련해서 분열의 아픔을 겪었는데 이번 경우는 그와는 달리 교회 땅을 팔고 이전하는 것과 관련된, 그러니까 돈과 관련된 분열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분열이 더 아팠지만 자세한 내용은 제가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분열의 성격은 다르지만 그래도 과거 분열 때 제가 겪고 배운 것이 지금 교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얘기했습니다. 예배 후에 교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제 마음과 의사가 전달된 것을 확인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만에 달라진 사회 분위기

2년 전에 고국을 방문했을 때는 촛불시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그와 같은 사회적 꿈틀거림은 느낄 수 없었고 난데없는 일부 사설유치원 원장들의 비리가 알려지자 이에 대한 비난으로 여론이 들끓었고 원장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여론에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 불법음란물 제작회사 대표의 엽기적인 폭력행위가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고 기골이 장대한 청년 하나가 작은 체구에 나이도 든 폐지 줍는 여인을 때려죽였다고 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던 남북 간의 화해 움직임이 주춤하고 있었고 북미관계 개선의 속도가 늦춰져 있었으며 언제 좋았던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경기’라는 것이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다면서 부자나 빈자나 할 것 없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전에는 들을 수 없던 외국인들의 말소리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에 좀 일찍 명동에 도착해서 택시에서 내렸더니 골몰골목에서 중국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여행 가방을 끌고 나오는 걸 봤습니다.

이런 사회상황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방문한 교회들과 거기서 만난 교인들과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방문한 서울 향린교회, 서울 제일교회, 그리고 순천중앙교회의 교인들은 대개는 성향이 비슷했으므로 이번에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습니다. 순천중앙교회가 교단도 달랐고(예장 통합)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교회였으므로 다른 두 교회와는 차이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일반 교우들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만 목회자 세미나 자리에서 인근 교회의 목회자들과 얘기 나눌 수 있었는데 그조차 대개 젊은 목사들이었기에 이 또한 일반화하기를 어렵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받은 인상은 지금 한국 개신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느라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개신교에는 크게 두 가지 줄기가 있어왔습니다. 하나는 신학적으로는 보수주의적이고 교회적으로는 성장일변도의 흐름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진보신학을 갖추고 겨레의 삶의 조건을 만드는데 참여하는 사회참여형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자는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참여형과 재야형으로 나뉘었다가 그 후 10년의 퇴보정권 동안 일치된 실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를 맞아 아직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보수개신교는 사회변화와 무관하게 성장위주의 길을 걷다가 지금은 변화된 사회 환경에 일격을 맞았습니다. 과거 퇴고정권에서라면 적당히 넘어갔을 것 같은 일들도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명성교회의 세습이 이처럼 순조롭지 않은 것도 세상은 변했는데 이들은 그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터

하지만 이보다 눈에 띠는 변화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가 과거에 누렸던 권위와 영향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종교에 무관심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이는 종교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종교가 내놓는 주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럼 사람들은 비종교적이 됐을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은 기존 종교가 아닌 새로운 종교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습니다. 과거에 종교가 누렸던 지위와 영향력을 지금은 돈이 차지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결코 돈 얘기를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도 돈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저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서울제일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아는 분은 알겠지만 이 교회는 1960년대부터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해 온 고 박형규 목사님이 목회했던 교회입니다. 군사정권은 이 교회에서 박 목사님을 내쫓기 위해 기무사를 통해 내분을 조장했고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해서 주일에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교회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문 앞에서 지켰던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오랫동안 중부경찰서 앞에서 노상예배를 했고 이 사실이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교회에서 예배하고 설교하면서 느낀 점은 현재 목회자들이 애를 쓰고는 있지만 과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70-8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어르신들을 만나 뵐 수 있었지만 젊은 기운은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한편 순천중앙교회에서는 일반신자들은 못 만났지만 젊은 목회자들과 주변지역의 목회자들을 세미나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는 광주에서 온 목회자들로 몇 분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이들 젊은 목사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는 의지를 갖고는 있지만 바람직한 목회를 실천하는 시니어 목회자들을 만날 수 없어 답답해했습니다. 순천중앙교회에는 홍인식 목사님에게 배우면서 같이 목회하려고 멀리 서울과 부산에서 온 부목사들이 있었습니다. 홍 목사님은 순천과 인근 지역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해방신학을 전공한 분답게 없던 교회협의회도 조직하여 에큐메니칼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스페인 해방신학자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의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라는 책을 그 바쁜 와중에서 번역해서 출판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보수적인 교회 풍토를 어떻게 바꿔나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건 단기간에 이뤄질 일이 아닙니다.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이뤄나가야 할 터인데 과연 그 일을 세대를 이어서 할 후계자들이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운동의 씨앗은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읽은 예수님의 비유가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 씨앗을 의외로 별로 젊지 않은, 제 세대의 사람들에게서 봤습니다. 제 세대는 5.18 광주항쟁과 1987년 민주항쟁을 젊은 나이에 겪었습니다. 그 후로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이제 이 세대는 역사의 현장에서 물러나는 세대가 됐습니다. 사실 제 친구들은 65세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직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아직도 그 시대의 정신을 올곧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아직도 교회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은퇴했지만 신앙의 열정은 여전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 중 한 사람이 쓴 시를 인용하며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제가 서울 향린에서 일했을 때 같이 활동했던 이계연 님의 시 ‘베이비부머의 일기’인데 이 시는 <촛불혁명 시민의 함성>이란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쟁 끝난 지 오륙 년
집집마다 아들딸 주렁주렁 낳던 시절 태어나
보리밥, 조밥, 고구마 밥,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그날그날 배만 채워도 좋았지.

초딩 수학여행은 쌀 한 되씩 가져가고,
지나가는 시간버스를 타고, 대웅전 바닥에서 잤고,
중·고딩 수학여행은 낼 돈이 없어 포기하고
가을걷이 농사일을 돕다가
좋은 곳 찾아 돌아다닐 친구들 생각에
괜스레 짜증을 내곤 했었지.

어렵게 간 대학, 3학년, 80년 5월
놀기도 최고, 공부도 가장 필요한 그 시기
오전에는 수업하고
점심 먹고 운동장에 모여
학과별로 줄 맞추어 금남로로 나갔지.
캠퍼스보다는 금남로에서
참담한 시간을 보냈네.

남들처럼 군대 마치고
밥벌이 찾아 상경하니 1987.
사무실이 시청 앞 광장 지척이라
들려오는 함성 귓전에 울려
선배들 눈치 보아가며
화장실 가는 척, 은행에 가는 척
셔츠에 넥타이만 대롱대롱
넥타이부대 되었네.

밥벌이 30년 하고 좀 쉬고 있으니
광화문 촛불이 나를 불렀네.
주말이면 광화문에
밝은 촛불 하나 보탰을 뿐.

역사의 마디마디 나를 피해가지 않으니
이 또한 축복이리라.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 하였던가?
우리 사는 나라, 우리 조국이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이제는
사드로 필요 없고 핵무장도 필요 없는
하나 된 민주통일 조국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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