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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향린강단
제 목 : 2019년 8월 25일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나는 이런 예수가 싫다 1
글번호 : 814    조회 : 43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19-09-03 11:01:00   
 
2019년 8월 25일 / 성령강림절 열두 번째 주일
“나는 이런 예수가 싫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마태 1:1

곽건용 목사

1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마태 1:1).

시리즈 제목 정하기 힘들었다

오늘부터 ‘나는 이런 예수가 싫다!’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설교를 하겠습니다. 시리즈 제목을 정하는 데 고민 좀 했습니다. 오강남 교수님은 비교종교학자로 관계자들 사이에는 알려져 있는 학자였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 교수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책은 <예수는 없다>인데 본래 교수님은 <그런 예수는 없다>를 제목으로 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그 제목으로는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서 ‘그런’을 빼고 <예수는 없다>로 제목을 지었다고 하네요.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물론 내용도 좋지만 제목 덕도 좀 봤습니다. 이것은 저자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저도 거꾸로 시리즈 설교 제목을 ‘나는 예수가 싫다’로 하려고 했는데 그랬다가는 너무 큰 물의를 일으킬 것 같아서 ‘나는 이런 예수가 싫다’로 순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복음서 중에서 마태와 누가복음에만 등장합니다. 하지만 두 족보는 내용이 사뭇 다릅니다. 마태복음이 전하는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이삭, 야곱, 요셉 순서로 내려와서 예수의 아버지 요셉에 이르러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로 마무리합니다. 반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는 예수님에게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을 거쳐 “므두셀라, 에녹, 야렛, 마할랄렐, 가이난, 에노스, 셋, 아담에게 이르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로 마무리됩니다. 아담을 하느님의 피조물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이 특이합니다.

두 족보는 예수님의 시조를 각각 아브라함과 아담이라고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가 전하는 족보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하면 긴 시간 얘기할 내용이 있습니다. 두 복음서가 왜 시간 순서를 달리 서술하는지, 곧 마태는 더 오랜 과거에서 시작하는데 비해서 누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가 뭔지, 왜 마태는 아브라함을 출발점으로 삼는데 누가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그리고 마태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 여리고의 창녀 라합, 모압 여인 룻, 다윗과 불륜관계였던 밧세바,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등 다섯 명의 여인들을 족보에 포함시켰는데 누가는 단 한 명의 여자로 포함하지 않았는지, 왜 마태는 하필 그 여인들을 족보에 넣었는지 등등 얘기할 내용이 많지만 저는 오늘 다른 주제를 갖고 있기에 그런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윗,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 족보의 중심

마태가 전하는 예수의 족보의 중심인물은 다윗입니다. 마태복음 기자가 족보를 통해 하고 싶었던 주장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부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예수님은 부른 호칭 중에 ‘다윗의 자손’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불린 경우가 여러 번 있다고 전합니다. 마태의 경우만 살펴봐도 많습니다.

마태 1장 1절은 오늘 읽은 본문이고, 1장 20절에서는 천사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9장 27절에서는 눈 먼 사람 둘이 예수님더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는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쳤고, 15장 22절에서는 가나안 여인(이방 여인)이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달라며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호소했습니다. 20장 30절과 31절에서는 눈 먼 사람 둘이 지나가는 예수님더러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쳤고, 21장 9절과 15절에서는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라고 환호했습니다. 이 경우들은 모두 예수님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인 또는 무리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경우들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다윗의 후손임을 자처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다윗의 자손’이 거론된 경우가 두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번은 예수님 자신이 거명하신 경우이고 다른 한 번은 예수님 없이 사람들끼리 논쟁을 벌인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누구의 자손입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윗의 자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다시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아무도 예수께 대답하지 못했고 그 날부터는 예수께 감히 묻는 사람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얘기가 복잡해 보이는데 길게 얘기할 여유는 없어서 간단히만 얘기하면 이 시편을 지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얘기입니다.

메시아가 갈릴리 출신이라고?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인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는 얘기가 요한복음 7장 30절 이하에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 가운데는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러는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날 수 있을까? 성경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날 것이요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무리 중에 분열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예수님이 빠지고 사람들끼리 예수님의 메시아 여부를 토론한 경우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내놓았을 리 없습니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소개한 마태복음의 예수님 족보를 모른다고 보입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느니 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이들이 아는 대로는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태어난 갈릴리 출신입니다.

이들이 뭘 몰라서 이런 주장을 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마태의 족보와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일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곧 마태가 전하는 예수님 족보도 베들레헴 탄생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도 없는 학자들의 말 따위는 믿을 게 못된다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면 안 됩니다. 학자들은 그들의 학문적 양심에 따라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신앙을 무너뜨리려 하거나 기독교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그 모든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서는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데 주목적이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서는 일어난 일을 신앙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한 책이고 그 사건에서 우리가 뭘 배워야 하는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성서 저자들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때로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런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을 분도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성서가 오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배웠고 철석까지 믿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성서를 공부하면 할수록 성서가 왜, 어떻게 해서 하느님의 말씀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러면서 성서는 이른바 객관적 사실보다 메지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후에 성서를 더 사랑하게 됐고 더 열심히 연구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인가?

다시 다윗의 자손 얘기로 돌아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전했습니다. 거기서 태어났지만 헤롯의 아기 학살을 피해서 가족이 모두 이집트로 피신해 있다가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헤롯의 아들 아르켈라오가 왕이 됐음을 알고 나서 혹시나 그에게 해를 당할까봐 베들레헴이 아닌 갈릴리로 가서 거기 정착했다고 말합니다. 반면 누가는 요셉의 가족은 본래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을 하라고 명령해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도중에 예수님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할례도 받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시므온과 안나도 만난 다음에 고향 갈릴리 나사렛으로 내려왔다는 겁니다. 이렇듯 두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가 둘 다 실제 일어난 사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큽니다.

왜 그럴까요? 왜 두 복음서 기자는 서로 다른 얘기를 전할까요? 그것은 교회가 초창기에는 예수님의 탄생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나중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높이면서 탄생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서로 다른 얘기를 전하게 됐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추측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나은 다른 해석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대체로 이렇게들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복음서가 서로 다른 탄생 이야기를 전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예수님의 탄생을 베들레헴과 관련시키려 했다는 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인데 유대인들은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므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려 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과도 비견할 수 없는 위대한 분이지만 유대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왕은 다윗이므로 그와 연결시키려 했던 겁니다.

저는 이런 게 싫습니다. 이 점에서는 저는 예수님이 싫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만들려고 온갖 애를 썼던 사람들이 싫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런 그들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서 스스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주장했다면 저는 그런 예수님을 싫어했을 겁니다. 다시 말씀하지만 제가 싫은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면 안 되는 예수님입니다.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메시아 자격이 있고 율법에 부합하는 가르침을 펼쳤기 때문에 믿을만하다는 예수님, 저는 그런 예수님이 싫습니다.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하는 모든 행동이 실제로 그를 위하는 게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를 위한다면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당신을 경외하고 경배하고 그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식으로 믿기를 원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으로 만든 데는 함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이자 함께 하느님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동료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당신을 ‘주’라고 여기지 말고 ‘친구’로 여겨 달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높이기만 하면 좋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높여지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저는 그런 예수가 싫습니다. 그런 행위는 예수님에게 금관을 씌워서 그분을 화석화하는 것입니다. 제가 믿는 예수님은 살아 있는 분이지 화석이 되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예수는 싫습니다. 그런 예수는 믿지 않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런 예수를 싫어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런 예수는 믿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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