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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산책
제 목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글번호 : 2    조회 : 799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06-10-22 04:11:0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개역성경)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같은 곳, 공동번역 성경)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같은 곳 1:1, King James Version)
“When God began to create heaven and earth …” (같은 곳, Jewish Publication Society, Tanakh)


                                            1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이 선언은 구약성경의 첫 문장일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기도 합니다. 어떤 글이든 첫 문장이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듯이 글을 쓸 때 첫 문장 쓰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아무리 글 전체의 줄거리와 구조를 미리 생각해놓았고 서술 순서를 머리 속에 그려놓았다 하더라도 첫 문장을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일사천리로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한 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전해졌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여러 학자들이 여러 의견을 내놓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의견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논쟁에 끼어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성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든 간에 좌우간 성경을 시작하는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는 선언입니다. 성경의 첫 문장이 하나님을 다르게 성격 규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예를 들면 구원자나 심판자 등으로 규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성경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창조자’ 라고 성격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도신경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그 만큼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고 우선적이라고 믿어져 왔음을 보여줍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기독교와 과학은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지난 두 세기 동안 둘 사이는 대단히 좋지 않았는데 다윈이란 사람이 주장한 진화론이 그 원인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가 주장한 진화론이 기독교의 창조론을 부정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그의 학설을 교회의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다윈 자신은 자신이 죽은 후에 교회가 보여준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나는 교회를 해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는데…”하고 안타까워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진화론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 한결같이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적그리스도’ 대하듯 했지만 현재는 그 정도는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과 일반 교인들의 생각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진화론이 복음에 해악을 끼친다고 여기고 있지만 중고등학교에서 6년 동안 과학 과목을 배운 일반 교인들은 진화론에 대해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둘 다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창조론과 진화론은 ‘묘한 공존’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은 ‘지적 설계론’ (Theory of Intelligent Design)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지적 설계론은 생물의 진화에 대해 순수하게 자연주의적인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그에 대한 대안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곧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이 그 어떤 지적인 행위자 (an intelligent agent/agents) 에 의해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는 경험적인 증거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바로 지적 설계론이 되겠습니다. 자연 세계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undirected) 자연의 힘만으로는 적절하게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현상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은 그 어떤 지성이 작용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자연 현상들 가운데서 지성의 표징들 (signs of intelligence, 이 말은 지적 설계론의 대표자 격인 윌리엄 뎀스키 [William Dembski] 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을 찾아내려 합니다.

어떻습니까? 세상 많이 달라졌지요?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지적 설계론은 기독교의 창조론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지성’ (intelligence) 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이 이론에는 교회가 반가워 할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고맙게도 지적 설계론은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지적 설계론만 갖고 보면 과학과 기독교의 거리가 전보다는 많이 가까워졌음에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둘이 서로 원수지간은 아님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기독교와 과학이 완전히 화해했다고 본다면 그것도 오해일 겁니다. 둘은 서로 경계하며 상대방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2

 오늘날 ‘창조론’ 하면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진화론’입니다. 둘이 하도 오랫동안 갈등관계에 있었으니 그렇게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진화론이 창조론에 대항하기 위해 주장된 것도 아닌데 교회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 창세기 1장 1절이 쓰였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그때는 진화론이란 것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지적 설계론이란 말로 설명해야 할 필요도 그때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창세기 1장 1절을 쓰신 분은 무슨 목적으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고 주장했던 것일까요? 어떤 진실을 말하려고 이렇게 선언했을까요? 밑도 끝도 없이 아무 목적도 없이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아니겠지요. 대체 뭘 말하려 했던 걸까요? 하느님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거나 선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창조주’라고 선언한 데는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창조주’ 라는 등식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경 첫 머리에서부터 이 사실을 확실히 하고 싶었을까요?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 신이 창조주라고 주장한 다른 민족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그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 너희들의 신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창조주라니까!” 라고 주장했던 걸까요? 만일 그런 뜻이었다면 마치 아이들이 “우리 아빠가 네 아빠보다 더 힘이 세다.”면서 다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내가 믿는 신이 진짜 신이라거나 다른 신들보다 더 힘이 센 신임을 증명하려면 상대방 신과 싸워 이겨야 하는데 신들끼리의 싸움은 결국 인간이 대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믿는 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면 다른 신을 믿는 상대방과 싸워 이겨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유치한’ 생각처럼 들리지만 고대인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5장을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겨 이스라엘 군인들이 전쟁터에 들고나왔던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빼앗았습니다. 블레셋은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자기들이 믿는 다곤 신의 신전에 전리품으로 갖다 놓았습니다. 자기들의 신인 다곤 신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이겼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이런 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어떤 다른 신들보다 힘이 월등히 센 신이라고 선언하고 싶었다면 굳이 성경의 첫 문장을 창조주 고백으로 하지 말고 ‘전쟁의 신’ 고백으로 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고대 중동지방의 강대국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순서대로 일어났다 스러져간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의 제국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의 여러 군소 부족들은 이런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살면서 양 강대국의 지배를 번갈아가며 받았습니다. 이들 군소 부족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제국의 지배 받았을 뿐 아니라 문화, 종교적으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예속된 상태에서 유독 종교적으로만 자유로웠다면 이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발굴된 여러 문서들과 유물들에서 우리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의 영향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얘기들과 비슷한 얘기들이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시쉬’ (Enuma Elish)나 ‘아트라하시스 서서시’ (Epic of Atrahasis) 등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이나 고대 중동지방의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는 상식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성경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관점과 신학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은 기록될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던 오래된 자료들을 이용해서 자기만의 독특한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창세기 1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해서 모든 인류가 다신론을 믿던 시기에 쓰였습니다. 각 족속이 여러 신들을 믿었다는 의미에서 다신론이 아니라 어느 족속이든 자기들이 믿는 신이 있었지만 그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믿지는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이를 영어로는 다신론(polytheism), 유일신론(monotheism)과 구별해서 ‘henotheism’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족속에게는 우리 신이 있고 다른 족속에게는 다른 신이 있다고 믿었고 각각의 신들이 관할하는 지리적 영역이 정해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한 지역에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면 먼저 살던 지역에서 믿던 신을 버리고 새롭게 정착하는 지역의 신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와 같이 먼 거리를 이주하는 일은 당시에는 거의 없었으므로 믿는 신을 바꾸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아브라함의 경우는 매우 특이했고 이례적이었습니다. 요약하면 각 종족이 믿는 신들이 서로 달랐고 각 지역을 지배하는 신들이 서로 달랐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한국의 신과 미국의 신은 서로 다른 신이고, 한국에 살다가 미국에 오면 한국에서 믿던 신을 버리고 미국의 신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종교적 상식과는 매우 거리가 멀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창세기 1장 1절 얘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글이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번 글에서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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