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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산책
제 목 : 하나님 마음에서 출렁거렸던 물결 (창세기 6-9장 노아 홍수 이야기)
글번호 : 6    조회 : 512    작성자 : goodneighborhood    작성일 : 2006-10-29 04:00:4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5-8 개역개정판).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20-22 개역개정판).

 The LORD saw that the wickedness of man was great in the earth, and that every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continually.  And the LORD was sorry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to his heart.  So the LORD said, "I will blot out man whom I have created from the face of the ground, man and beast and creeping things and birds of the air, for I am sorry that I have made them."  But Noah found favor in the eyes of the LORD. (창세기 6:5-8, RSV).

Then Noah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took of every clean animal and of every clean bi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on the altar.  And when the LORD smelled the pleasing odor, the LORD said in his heart, "I will never again curse the ground because of man, for the imagination of man's heart is evil from his youth; neither will I ever again destroy every living creature as I have done.  While the earth remains, seedtime and harvest, cold and heat, summer and winter, day and night, shall not cease." (창세기 8:20-22, RSV)

 
                                            1

 노아 시대에 있었던 홍수 이야기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잊혀질 만하면 노아가 만든 방주 조각이 어딘가에서 발견됐다는 식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곤 했습니다. 아라랏 산 꼭대기에서 배 조각으로 보이는 물건을 발견했다면서 이로써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이 입증됐다고 흥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저도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성경의 역사성이 어떻게든지 입증됐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건전한 이성’을 가진 상식인으로서, 어디서 무엇이 발견됐다고 해서 성경이 전하는 사건의 역사적 사실성이 입증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노아가 어느 시대 사람인지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배의 파편으로 보이는 나무조각이 발견됐다고 해서 그것이 노아가 만든 방주의 파편이었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나무조각이 노아가 만든 방주의 파편이 아니었다고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의 발견으로는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증명하거나 반박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입증하려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성을 입증해야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있다고 그들이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이 역사적 사실성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데 전심전력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간단히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규정해버리고 맙니다 (시편 14:1). 물론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신앙심과는 상관없이 사회, 문화적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던 사회적 실재 (social reality)였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다른 사건들의 역사적 사실성을 입증하느라 성경이 애를 쓸 리가 있겠습니까? 

성경이 쓰였던 때와 시대적 맥락은 크게 달라졌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노력은 오늘날에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나 성경의 진리성을 입증하려고 애를 쓰는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에도 많습니다. 그 노력이 가상하기는 하지만 그분들이 내세우는 증거들은 기왕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것들이고, 반대로 기왕에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효과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말하는 책이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피조물 중에서도 특별히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데 성경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말할 때도 관심은 그 사건의 역사적, 객관적 사실성을 말하려는 데 있지 않고 그 사건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말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성경은 때로 역사성을 과감하게 무시하기도 합니다.

관심사에 따라 얘기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는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 기사만 봐도 압니다. 똑같은 사건을 전하는데 신문마다 논조가 모두 다르지 않습니까. 사실 보도를 생명처럼 여긴다는 신문 기사조차 이럴진대 하물며 역사가의 눈과 성경의 신앙인의 눈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신앙에 중요하다고 여겨진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중요한 사건일지라도 그것이 신앙과 크게 관련되어 있지 않으면 과감하게 무시하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2

노아 시대 홍수 사건의 역사성과 신앙에 대해서 얘기하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아 홍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금방 ‘노아 홍수 이야기’라는 말을 썼지만 과연 이 말이 창세기 6-9장의 적절한 제목인가는 의심스럽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불려왔으므로 편의상 그렇게 썼지만 내용을 잘 읽어보면 정작 창세기 6-9장이 말하려는 바는 홍수 사건 그 자체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40일 동안 폭우가 쏟아졌으니 땅 위가 어떻게 됐을까요? 땅 위를 가득 채운 물 때문에 뭍과 물의 구분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물은 바람이 부는 대로 사정없이 출렁댔겠지요. 땅 위에서 숨쉬던 생명이 이 물 때문에 죽어갔지만 땅 위를 가득 덮은 물이 바람에 따라 출렁거렸을 광경을 상상해보면 매우 장엄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땅을 뒤덮은 물 못지않게 사납게 출렁거렸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창세기 6-9장은 이렇게 출렁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텍스트입니다. 노아 홍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의 홍수’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할 수 없는 이 일을 성경은 수시로 합니다. 성경은 수시로 하나님 마음을 들락거리며 그 안에 들어 있는 생각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노아 홍수 이야기는 하나님 마음 속에 있던 생각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

 
하나님은 지금 사람이 지은 죄악 때문에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고 계십니다. 제가 간단하게 ‘사람이 지은 죄악 때문에’라고 말했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합니다. 개역성경은 이 대목을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라고 번역했고, 개역개정판 성경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라고 번역했으며, 공동번역 성경은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를 개정표준역 영어성경(Revised Standard Version)은 “The LORD saw that the wickedness of man was great in the earth, and that every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continually.” 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만 빼고는 인용한 모든 번역본이 히브리어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려고 애썼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원문에 쓰여진 단어들을 그대로 번역하면 매끄럽지 않다고 보고  몇 단어를 생략해서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라고 줄여버렸습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한글로는 자연스럽지만  텍스트가 의도적으로 반복하여 사용하는 단어가 있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개역성경은 구판이나 개정판이나 히브리 원문에 사용된 단어들을 나름대로 제대로 옮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란 말은 한글로는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히브리 원문에 있는 세 단어를 각각 ‘마음’ ‘생각’ ‘계획’으로 옮겼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합니다. 개정판은 구판을 따르되 문장을 좀더 부드럽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개역성경이 ‘마음’ ‘생각’ ‘계획’ 으로 번역한 단어들을 개정표준역 영어 성경은 각각 ‘heart’ ‘thoughts’ ‘imagination’ 으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각각 ‘요쩨르’ ‘마하샤바’ ‘레브’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들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 파고들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글로 ‘계획’ 으로, 영어로는 ‘imagination’ 으로 번역한 ‘요쩨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덧붙이면, 이 말은 본래 ‘만들다’ ‘형성하다’ 라는 뜻의 ‘야짜르’ 라는 동사에서 온 명사로서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때 쓰는 말인데 이것이 추상명사의 뜻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영어로는 ‘’purpose’ 나 ‘device’ 의 의미를 갖는데 우리말로는 ‘요량’ 이라고 번역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종합하면 본문은 사람이 마음에서 생각하고 꾸며내는 것마다 악했다는 뜻으로 읽으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인간을 평가하고 판단하여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대하실까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평가는 한 마디로 ‘악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악으로 인해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회개할 가능성은 0 %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 이 악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셨고 결론적으로 지상에서 숨쉬는 모든 생물을 쓸어 없애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정 맞는다’ 더니 죄 없는 동식물들은 인간과 더불어 지상에 살고 있었다는 죄 아닌 죄 때문에 동반 멸망할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노아만은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고 그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노아는 기나긴 세월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 동안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조롱했겠습니까.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앞으로 큰 홍수가 닥친다면서 생업도 내팽개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방주를 만들고 있는 노아를 사람들은 대놓고 조롱했겠지요. 뉴올리언즈의 제방이 위험하니 긴급히 보수하지 않으면 홍수에 무너질 것이라고 누군가가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올렸는데 부시 대통령은 그 보고서를 무시했다지요. 테러와 전쟁 하느라 오죽 바빴겠냐 마는 인간이 막을 수 있거나 적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변고를 막지 않아 그 피해를 극대화한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매일 아침에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는 신앙인답지 않아 보입니다. 뉴올리언즈 사태 이후에는 창세기 6-9장을 읽을 때마다 노아를 조롱했을 세상 사람들의 얼굴에 미국 대통령과 네오콘의 얼굴들이 겹쳐지곤 합니다.

방주를 완성하자 노아는 종족 보존을 위해 짐승들을 방주에 집어 넣었습니다. 드디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는 하늘에서만 내리지 않았습니다. 땅 속에서도 물이 솟아나왔다고 했습니다. “땅 밑에 있는 큰 물줄기가 모두 터지고 하늘을 구멍이 뚫렸다” (창세기 7:11, 공동번역).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갈라놓았던 물과 뭍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새나 집짐승이나 들짐승이나 땅 위를 기던 벌레나 사람 등 땅 위에서 움직이던 모든 생물이” 숨지고 말았습니다. “마른 땅에서 코로 숨쉬며 살던 것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7:21-22).

 
                                           3

폭우는 40일 동안 쏟아졌습니다. 비가 멎은 후 물이 빠지는 데만도 150일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피조세계는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겁니다. 물고기들과 방주에 있던 노아 가족 및 동물들 외에는 지상에 살아 있는 생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노아와 방주 속의 짐승들을 ‘기억해내시어’ 바람을 일으키시자 물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방주는 아라랏 산 등마루에 머물렀고 그로부터 다시 40일이 지나자 산봉우리가 드러났습니다. 노아는 두 차례에 걸쳐서 비둘기를 날려 땅이 말랐음을 확인하고 나서 하나님의 명을 받아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노아가 밖으로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신앙인답게 하나님께 번제를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바친 번제물의 향긋한 냄새를 맡으시고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셨습니다. 성경은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 속’ 으로 안내합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21-22).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판단하고 계십니다. ‘마음’ 이란 말과 ‘계획’ 이란 말이 눈에 익지 않습니까? ‘생각’ 이란 말이 빠지긴 했지만 앞에서 읽었던 창세기 6장 5절에서 읽은 내용과 매우 비슷합니다. 창세기 6장 5절은 “그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이라고 했고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으니 글자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았지만 텍스트를 쓴 분이 6장 5절의 내용을 ‘의도적’ 으로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히브리 원어로도 확인됩니다. 8장 21절에는 6장 5절에 쓰였던 세 단어들 중에서 ‘마하샤바’ 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다른 두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이냐고요? 이 정도의 반복은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이 정도의 반복은 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표현이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됐다면 그래도 그 반복을 대수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에 인간과 피조세계 전체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곧 심판을 초래한 원인이 바로 인간의 악함이었습니다. 그런데 8장 21절에서는 똑같은 판단, 곧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판단이 이제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결심’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판단이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한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지극히 의도적인 반복이란 말씀입니다. 우리 텍스트는 뭔가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의도적으로 같은 단어들을 반복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4

옛 어른들은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이 있는데 그것을 고치기는 매우 힘들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맞다는 사실을 저는 자주 확인합니다. 남 얘기는 그만두고 저 자신이 그렇습니다. 저는 제 성격 중에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고치려고 노력했지요. 꽤 긴 세월 동안 제 나쁜 성격을 고쳐보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아직도 고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평생 고치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도 옛날부터 갖고 있던 못된 성격을 그대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못된 성격이 다 고쳐지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의 텍스트는 사람의 악한 성질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악함은 홍수 심판을 받고 나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는 심판 이전이나 심판 이후나 악하게 마련이랍니다. 악으로 치닫는 인간의 경향이 홍수 심판 후에도 고쳐지지 않았음을 텍스트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끈질기게 악한 경향을 갖고 있는 인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이런 인간과 하나님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에덴 동산에서 맺었던 관계는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은 후로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결국 창세기 6장에 와서는 ‘싹쓸이’가 불가피할 지경이 됐습니다. 세상은 처음 창조됐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에게 벌인 살인극은 이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 때문에 피조세계 전체가 죄악으로 물들었습니다. 부분적인 치료로는 완치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부를 모조리 들어내는 ‘대수술’을 하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홍수 심판은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대수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악으로 치닫는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곪아 터진 육체를 잘라낸 칼로 마음까지 잘라내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인간의 죄악이 피조세계라는 그릇에 차고 넘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홍수든 지진이든 천재지변으로 심판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해결책을 강구하셨습니다. 그 해결책이 노아와 ‘언약’ (covenant)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물로 사람을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등장하는데 이것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이 말이 사용된 예입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세기 6:18]). 이 언약은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창세기 9:1-17).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는 창세기 1장 28절의 명령을 반복하신 후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짐승의 피는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동물 뿐 아니라 사람의 피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후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다짐하시면서 무지개를 다짐의 증거로 세우셨습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곧 기존의 관계가 변했음을 상징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추방된 이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달라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및 사람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깨진 것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맺어졌던 관계가 변화됨에 따라 초래된 결과였습니다. 그 궁극적인 결과는 인간을 창조하셨던 데 대한 하나님의 ‘후회’와 홍수를 통해 지상의 생물을 싹쓸이하신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렇게 악화일로를 치닫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언약’ 맺음을 통해서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무엇이 새로워졌습니까? 첫째로, 인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홍수라는 대수술을 받기 전이나 받은 후나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는 여전히 악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칼은 육신의 환부만 도려냈을 뿐 깊고 깊은 영혼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피조세계에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홍수로 잠시 질서가 흔들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다시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 7:22).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심판을 불가피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사람의 악함’이 홍수 이후에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은 하나님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실이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면 이는 평가자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볼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마음의 변화를 우리는 ‘은총’ (grace)이라고 부릅니다. ‘싸구려 은총’ (cheap grace)이라는 말을 쓴 사람은 독일의 순교자 본회퍼였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변해서 심판하는 대신 은총을 주셨다고 해서 이를 ‘공짜’로 횡재했다고 여기고 좋아서 날뛰는 사람은 ‘은총’이라는 말은 입안에 물고 있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격렬하게 출렁거렸던 풍랑의 산물입니다. 먹다 남은 빵 조각을 개에게 던져주듯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은총을 주기 위해 하나님은 아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라는 칼로 인간의 환부를 도려내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자 그 칼로 스스로의 가슴을 도려내신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인간의 악행을 아파하시며 악행에 대해 벌 주시는 것으로는 인간이 당신 마음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자 스스로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아픔을 우리가 알아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은 값비싼 은총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저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아니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출렁거렸던 풍랑 속에서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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